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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 문화와 애시드 하우스 음악에 대해 알아볼까요?

by 끝없는 발견의 세계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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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 문화와 애시드 하우스 음악
레이브 문화와 애시드 하우스 음악

 

아웃도어의 축제 : 레이브 문화의 부상

 

 

레이브 문화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크게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불법 파티에서 이루어지던 EDM(Electronic Dance Music)의 급격한 성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초기 레이브 문화는 청소년들과 젊은 세대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 전통적인 클럽 문화를 넘어서 아웃도어, 즉 야외 공간에서도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레이브의 핵심은 그저 음악을 즐기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 특히 젊은이들의 자유와 표현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 문화였습니다.

 

레이브는 전통적인 사회 규범과 경계를 허물며, 참석자들에게 자유롭게 춤추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무제한의 자유는 아웃도어 레이브의 매력 중 하나였습니다. 비포장 도로, 버려진 창고, 농장, 숲 등, 전통적인 파티 장소가 아닌 곳에서도 레이브는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불법적이고 비전통적인 장소 선택은 당시 영국 정부와 경찰과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아웃도어 레이브는 또한 기술적 혁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음향 장비와 조명 기술, 특히 레이저와 스트로보 라이트는 레이브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런 기술적 진보는 DJ와 프로듀서들에게 더 큰 창작의 자유를 제공하였고, 음악의 다양성과 혁신을 더욱 촉진하였습니다.

 

결국, 아웃도어 레이브는 단순한 파티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운동과도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90년대의 청소년 문화와 유행을 주도하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애시드 하우스 : MDMA와 함께하는 신나는 비트

 

애시드 하우스는 198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전자 음악의 한 장르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독성 있는 반복된 비트와 신스 사운드가 특징인 음악입니다.

 

 

그러나 이 장르의 출현은 단순히 음악적 혁신만을 넘어서, 당시의 사회문화적 현상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애시드 하우스의 탄생은 MDMA라는 환각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환각제는 '엑스터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사용자에게 행복감, 사랑과 평화의 감정, 그리고 음악에 대한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애시드 하우스 음악과 레이브 파티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시기,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는 MDMA를 복용하고 애시드 하우스 음악을 들으며 춤추는 젊은이들로 붐비었습니다. MDMA의 효과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큰 공동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생성된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은 레이브 문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시드 하우스와 에쿠스터시의 인기는 정부와 경찰의 강력한 반발을 샀습니다. 당시 많은 클럽이 단속을 받아 폐쇄되었으며, 에쿠스 터시는 불법 환각제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화는 더욱 강력하게 성장하며 영국을 넘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애시드 하우스는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서, 그 시대의 청년 문화와 사회적 현상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음악, 약물, 그리고 자유로운 정신은 이 장르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 주요한 요소였습니다.

 

이는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며, 전자 음악의 다양한 장르와 서브컬처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영국 청년문화의 반항 : 레이브와 정부의 대립

 

1990년대 영국의 청년 문화는 큰 변화와 도전의 시기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레이브 문화와 그를 둘러싼 정부와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레이브 문화는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며 그 규모와 영향력을 확장시켰습니다. 애시드 하우스와 같은 전자 음악은 대규모 아웃도어 파티에서 울려 퍼지며, 에쿠스터시와 같은 환각제와 결합되어 청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레이브 문화는 기존의 사회 규범과는 다른 자유로움과 독립성을 지향했으며, 대중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레이브 문화의 성장은 영국 정부와 경찰의 강력한 반발을 받게 되었습니다. 레이브 파티에서의 마약 사용과 무질서한 행동들은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었고, 레이브를 주최하거나 참석하는 것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1994년에는 'Criminal Justice and Public Order Act'가 제정되어 레이브와 관련된 활동에 대한 제한이 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레이브 문화의 성장을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항 정신을 더욱 부각하며 청년들 사이에서 더 큰 지지를 받게 했습니다.

 

정부와의 대립은 레이브 문화와 그 안의 청년들에게 "우리와 그들"의 구도를 형성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레이브가 단순한 파티 문화를 넘어서 사회적 운동의 성격을 갖게 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이 시기의 영국 청년 문화는 레이브와 그를 둘러싼 대립을 통해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기존의 사회적 규범과 제도에 도전하며 새로운 문화와 생활 방식을 탐색했던 그들의 모습은 90년대 영국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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